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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손 _ 윤기언의 작품세계
 
김미금(미술사, 한국미술연구소 연구원)
 
윤기언의 작업에서 주요 모티프는 ‘손’이다. 왼손의 다섯 손가락이 다양한 동작을 펼치는 동안, 세필을 쥔 오른손은 쉬지 않고 손의 다채로운 표정과 몸짓을 표현해나간다.
작가는 예전에 불안정한 자아와 고독을, 무언가 갈구하지만 선택하지 못하는 불확신 속의 자화상을 통해 자기고백으로서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후, 자신의 얼굴은 동그라미 속 친구들의 얼굴로 바뀌고 그 얼굴들의 순환은 점과 선으로 어지러이 이어지면서 형태는 지워진 듯하지만, 다시 연상과 유추에 의해 형태 찾기는 시작되었다. 자신만의 새로운 형상을 찾으려는 작가의 고민은 그리는 손을 마주한 ‘그리지 않는 손’에서 실마리를 찾아나선 것 같다.
 
제스처, 관습적 도상에서 벗어나기
인간의 몸 각 부분을 통해 의사소통에 활용하는 제스처는 오랜 회화의 역사에서 언어적 표현을 위한 수단이었다. 특히,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미술에서 몸짓언어는 표정과 그 외 동작 등의 유추를 통해 비로소 완전한 의미전달 체계를 이룬다. 예를 들어, 지시하는 손짓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제스처의 하나로, 시대나 사조를 뛰어넘어 다양한 역할과 활용을 통해 매우 애호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카라밧지오 시대의 회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 손짓은 주로 창조주인 신과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생명의 전달자와 수용자, 부름을 받는 가리키는 손짓, 신성을 암시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의 <회화론>에서 인간 영혼의 의도를 표현하는 중요한 도상으로 제스처를 표현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 외, 알베르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이 보여주는 믿음과 숭고의 메타포, 사회주의 리얼리즘미술에서 주로 등장하는 구호와 선동의 제스처 등 관습화되고 도식화된 손짓은 메시지 전달과 상징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윤기언의 작품에서 중심을 이루는 손은 회화적 내러티브의 상황에서 분리되고 관습적 의미에서 벗어난 새로운 제스처가 되고자 한다. <손을 씻자>는 신종플루예방책으로서의 손 씻기를 오히려 접촉을 강조한 남녀 간의 애정행위에 비유하고, 12가지의 오므리고 편 다양한 손동작을 미묘한 얼굴표정의 변화에 비유하는 <손짓>에서 손은 복잡한 심리를 묘사하는 감정기호로 변신하였다. <012345...>에서 숫자를 표현하는 손동작은 유추를 통해 다양하게 변형되면서 기존의 도상과 부딪히기도 한다. 이렇게 이미지 기호가 원래 지녔던 메시지(signifié)는 유사한 형태의 변형으로 인해 대체되거나 제거되었다.
 
유추, 형상의 중첩과 변형
의미를 상실한 제스처는 단지 행위이자 그 자체로 시각적 형태에 지나지 않게 된다. '손짓'이 아닌 단지 손가락의 다양한 움직임을 형상화한 '손동작'의 무리들은 그 형태의 유사성에서 무리지어 다니는 열대어 ‘바라쿠다(barrcuda)’로 명명되었으며, 다양한 색채의 바라쿠다들은 이합집산을 하며 호랑이, 돼지, 토끼, 개, 소 등의 포유류를 그리는 군무(群舞)를 펼쳐 보인다. 우리의 눈은 그것이 한편으로 추상적인 자연의 형태로 또 다시 변신하기를 기대할 수도 있다. 이러한 유사한 손동작의 나열과 중첩은 손을 주로 그리기 이전의 작업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 작품<動>시리즈에서 자동기술적으로 찍어나간 점묘는 염주처럼 이어져 어지러이 뻗어가는 가운데 상형문자나 얼굴, 글자 등 우리의 눈에 기억된 형상이 발견되도록 설계되었다.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동그라미 속에 제각각 다르게 그려진 친구의 얼굴들은 긍정적인 의미의 "대화(話)"로 풀어내었으나, 같은 주제를 손동작으로 형상화한 작품<話>에서는 상대방을 모욕하는 듯한 거친 손짓들이 제각각 방사형으로 뻗어나감으로써, 자기주장만 앞세우며 합일점을 찾지 못하는 일방적인 대화의 폭력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윤기언의 작업에서 축소화된 몸으로서의 손은 시각형태를 통해 촉각과 청각의 감각을 전달하기도 한다. 작품<손이 뜨거워>는 붉은색 안료로 '앗, 뜨거워!'를 외치는 듯 소스라치게 놀라는 손동작의 다양한 형태를 중첩시켜 더 큰 형태의 뜨거운 손을 이룬다. 이것은 마치 에셔(Escher)의 판화에 등장하는 역설어법처럼 ‘뜨거운 손을 쥐고 있는 뜨거운 손을 쥐고 있는 뜨거운 손…’식으로 유사한 형태의 무한반복과 순환을 거듭함으로써 부분과 전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청각의 시각화 작업은 작품<메아리>나 <합창>에서 두드러지는데, 주먹을 쥐거나 활짝 편 손동작은 두 장의 얇은 한지에 그려 서로 배접하거나 채색의 짙고 옅음을 달리함으로써 마치 소리에 의해 진동하는 형태로 보이는 착각을 일으킨다.
 
기호, 소통의 부재
윤기언의 ‘손’ 모티프는 갈등과 모순에 가득찬 세계와 새로운 이상을 꿈꾸는 인간의 갈망을 상징화하는데 이른다. <창과 방패>에서 수많은 바위를 거머쥔 가위는 결국 자기 안에 모순을 배태하고 있는 역설의 형상을, 저마다 한 방향으로 뻗은 채 절규하는, 가리키는, 잡으려는, 공격하는, 구호 외치는, 모욕하는 손짓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한 <어디로>는 그 손끝이 결국 자신을 향해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부조리한 순환 고리의 단면을 보여준다. 중지를 뻗어 상대방을 비난하는 욕설의 기호들로 소용돌이치는 <진동>에서는 마치 한 개인의 비판이 연쇄적으로 급격히 파장을 일으키는 형태로 배열되어 일방적 발화로 인한 소통의 부재를 상징화하는데 이른다. 이처럼 소통의 기호가 원래의 의미망을 벗어나 충돌하고 대립하는 무질서한 세계는 손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몸(=기호)과 그것에 내포된 정신(=기의) 간의 불일치, 예측된 결과가 상실되는 근대이후 세계에 대한 불명료한 인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신체부위-손을 회화의 중심에 놓고 세필로 말끔한 선묘와 채색, 손마디 하나하나 노동집약적으로 쌓아나가는 윤기언의 ‘손’그림은 몸이 지닌 기호적 성격에 천착하고 사물과의 유사성을 포착하여 그 이미지에 텍스트를 제거하거나 덧붙임으로써 ‘손짓’이라는 관습적 도상에 확장된 의미를 부여해오고 있다. 그것은 끊임없는 습작을 거듭하여 새로운 조형을 갈망하는 ‘화가의 손’에서 이루어진 실험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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